# 자의식 과잉을 무찌르고 건강한 생일을 되찾자
이지혜 / 생일의 나를 싫어합니다
나는 생일이 싫다. 무언가를 싫어하는데 별다른 이유가 있겠냐만, 생일의 경우 구구절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1월에 태어났고, 그 당시엔 다들 그랬듯 학교를 한 해 일찍 들어갔다. 대부분의 친구들보다 자연스럽게 한 살이 어렸다.
대학교 1학년 때까지 언니나 오빠라고 부르라는 놀림을 받았고, ‘족보 브레이커’라는 원치 않는 타이틀 속에 학교를 다녔다(그리고 지금은 나이가 한 살 어리니 좋겠다고 되레 구박받는데, 그건 그것대로 억울하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빠른’의 운명을 달고 태어난 내 생년월일이 싫었다.
그래도 학교 혹은 학과 밖에서 친구들을 사귀면서 ‘빠른’ 생년월일에 대한 싫은 마음은 조금씩 사라지게 됐다. 나이주의를 배척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족보 브레이커’ 운운하는 재미없는 농담을 듣지 않게 되었고, 호칭 문제에 껄끄럽지 않고도 친구를 사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방학에 태어난 것 역시 생일이 싫은 큰 이유 중 하나였다. 방학이 되면 내 생일은 쓸쓸하게 잊혀지니까.
생일날 학교에 가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물론 대학생이 된 지금은, 학기가 아니어도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일이 되면 나는 자꾸 기분이 가라앉고 만다. 마크 주커버그 덕분인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제는 페이스북 생일 알림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일을 알게 된다. 대학에 들어온 후, 매일매일 누군가의 생일이었던 것 같다.
나 역시 좋은 하루 보내라며 생일 축하 메시지를 열심히 담벼락에 남겼다. 어느덧 일 년이 지나 내 생일이 되었다. 민망하여 종일 페이스북에 접속하지 않다가 늦은 오후에야 들어가보았는데, 그제야 알았다. 내가 페이스북 생일 알림을 설정해놓지 않았다는 것을! 당연히 다들 모를 수밖에 없는데, 조용한 알림 창을 보며 괜히 기운이 빠졌다.
생일이면 늘 그런 기분이 들었다. 기대했다가 김이 쭉 빠지는 느낌. 기대하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도 언제나 실패하는 날. 친한 친구가 내 생일을 까맣게 잊었을 때의 그 바보 같은 서운함이나 그렇다고 먼저 축하해달라고 말하기에는 멋쩍은 마음, 생일인데 특별하게 보내야 할 것 같은 부담감.
그리고 무얼 하며 보냈냐는 질문에 답하기 곤란한 초라한 하루까지. 그런 것들이 속 좁은 사람을 더 속 좁게 만들었다. 매년 생일 전날이면, 잠들기 전에 기도한다. 아, 그냥 내일 하루가 사라지게 해주세요! 싫어한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과도하게 의미 부여하고 있어서 그렇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진짜로 싫어하는 건, 생일이면 쉽게 초라해지는 나 자신일 것이다.
그런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그냥 생일을 싫어한다고 말하곤 한다. 온전히 싫어할 수만 있다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할 텐데. 하지만 이렇게 글을 쓴 걸 보면 누구도 내가 생일을 싫어한다는 걸 믿지 않겠지. 언제쯤 생일을 담백하고 자연스럽게 맞이할 수 있을까? 생일이 또다시 다음 달로 다가왔다. 아마 다음 생일까지는 어려울 것 같다. 흑.
[839호 – issue]
intern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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