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개의 이야기가 있는 자리

공민정 / 하나의 정답만 있는 술자리를 싫어합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과는 서로의 근황뿐 아니라 남의 이야기까지 꼭 주고받게 된다. 어떤 선배가 곧 결혼하고, 누가 어떤 회사에 들어갔고, 걔들은 여전히 사귀고 있고…. 한때는 나와 같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소식이다. 소식을 전해 듣는 사이가 된 이유는 아마 더는 같은 자리에서 대화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3학년 2학기에 교환학생을 갔다.

 

정말 짧게 머물다 왔지만, 다른 세계에서 그간의 편견과 떨어져 지내보는 일은 사고방식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사람의 숫자만큼 다양한 인생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에서 꼭 따라야만 할 것 같았던 루틴을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됐다.

 

제때 취업하고 집 살 돈을 모아 결혼하고 마지막으론 아이를 낳고. 그런 순서를 따르는 걸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모두가 꼭 그렇게 살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됐단 뜻이다. 20대 중후반이 된 사람들이라면 겪었을 과정이기도 하다. 돌아왔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고학번이나 졸업생은 심심하고 불안한 저녁에 후배들을 불러내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그럭저럭한 마음으로 앉아 있던 자리가 참을 수 없이 싫게 느껴졌다. 테이블에 여덟 명이 앉아 있으면 여덟 개의 삶이 있어야 하는데, 거기엔 마이크를 잡은 한두 명의 말만 있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회사 생활은 힘들지만 그래도 높은 연봉이 보람이다 같은 자랑이 은근슬쩍, 여자와 결혼을 제때 하기 위해서는 집을 마련해야 한다 같은 전형적인 이야기. 나에게 제일 가까웠던 이야기라면, 여자는 외모를 가꿔서 선택받아야 한다는 정도. 물론 대화를 주도하던 사람이 그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인생을 존중하지 않으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들 자기가 아는 범위에서만 말을 하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거기에 앉아서 듣기만 하다 보면 자꾸 내가 틀린 것 같았다. 싫은 걸 존중하기 힘들었던 그때의 나는 그런 언사를 비꼬면서 그 자리를 몇 번이나 불편하게 만들었다. 내가 그다지 마음 쏟을 필요가 없는 사람과 계속 싸우는 일은 피곤하다. 또 그 사람들도 자신의 방식으로 사람들과 즐겁게 만나기 위해 나온 것이다.

 

굳이 내가 없어도 되는 자리라고 판단되면 그곳을 조용히 빠져나오는 게 마음 편했다. 그 자리에서 나온 후, 나는 다른 자리에 많이 머물렀다.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만들었다. 거기에선 더는 듣기만 하지 않았다. 핑 하면 퐁, 탁구를 치는 것처럼 즐거운 대화였다.

 

새로 사귄 친구들과 며칠간 나눈 대화는, 입학 후 100번은 넘게 있었던 술자리에서의 대화보다 양은 적을지언정 훨씬 가치 있었다. 그간 내 시간을 쏟았던 관계의 안쪽이 텅 비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참 허무했다. 다만 그런 자리에 초연하지 못한 까닭이 내 열등감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도 고민하게 됐다.

 

‘싫어도 존중한다’의 속뜻은 누군가의 얘기가 오랜만에 들릴 때, 그 이야기가 왼쪽 귀에서 오른쪽 귀로 바로 흘러나가지 못하고 잠시나마 내 안에서 걸릴 때 쓰일 표현이다. 대학 졸업 후 마땅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여전히 자립을 꿈꾸는 나다.

그들과 같이 루틴을 충실히 따라갔다면, 그래도 나는 그 자리를 없어도 되는 자리라고 생각했을까? 고민은 최근 고등학교 친구 A가 결혼하며 풀렸다. 내 기억 속에서 A는 학교에서 공부를 가장 잘했고, 평생 먹고살 수 있는 직업도 있으며, 또래 중 가장 먼저 결혼했다. 누군가는 정석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삶이다.

 

그런 A에게 청첩장을 받던 자리였다. 음식점에 손님이 꽉 차 대기하던 중, 친구 B는 A에게 네가 결혼을 이렇게 빨리 할 줄 몰랐다, 너는 삐딱한 데가 있잖아, 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A가 별다른 대답 없이 멋쩍게 웃었다. 괜히 내가 나서서 A는 빨리 결혼할 것 같았다, 삐딱한 것과 결혼을 빨리 하는 건 상관없다고 말했다.

 

청첩장을 받던 자리에는 나와 그 친구를 포함해 총 4명이 있었다. 때에 맞춰 할 걸 다 했다고 평할 수도 있는 그 친구는 자신의 궤적만이 옳다는 뉘앙스를 단 한 번도 풍기지 않았다. 모두 각각의 삶에 관해 이야기했다. 연애나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지금 제대로 자리를 잡았든 그렇지 않든. 하나도 문제가 될 게 없었다. 문제가 될 것도 아니다.

몇 시간을 떠드는 동안 행복했을 뿐, 나의 지금이 잘못된 건지 곱씹게 되지 않았다. 내가 없어도 되는 자리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내가 있고 싶은 자리에 가는 것, 그런 게 ‘싫존’이라고 생각한다. 있고 싶은 자리에서 존중할 수 없는 말이 나온다면 논쟁이야 벌일 테지만, 내가 없어도 되는 자리에서 힘들어하거나 싸울 필요는 없다는 걸.


[839호 – issue]

intern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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